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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의 햐쿠닌쵸百人町교회를 안으로부터 보면
 햐쿠닌쵸교회를 아는 분들로부터 "독특한 교회"라고 들을 때가 자주있다. 어디가 독특한지를 들어보면 여러가지로 대답을 한다. 햐쿠닌쵸교회는 정말로 독특한 교회인가. 분명히 독특한 곳이 몇군데 있다. 그 중 하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몸이지만, 이유가 있어 1997년부터 햐쿠닌쵸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말하자면 수입품이다. 더우기 미국이나 유럽산이 아닌 아시아산이라는 것은 어딘가 다른 감이 들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 평신도선교사 필리핀인 세사르 산토요(Cesar Santoyo)씨가 우리들의 동료이다. 그는 일본에 와서 사는 많은 필리핀인들의 지원과 상담을 하고 있다.
난 허드슨(Nan Hudson)씨는 카나다연합교회의 목사로서 카나다에 살면서 햐쿠닌쵸교회의 협력 목사로서 햐쿠닌쵸교회의 선교활동을 카나다에서 전해 주고 있다. 한국의 잠실희년 (중앙)교회와는 1979년부터 자매관계를 맺고, 매해 번갈아가며 합동 수양회를 갖고 있다. 1999년에는 20년동안의 교류를 정리해 신교新教출판사로부터 [동아시아의 평화와 기독교] 『東アジアの平和とキリスト教』를 출판했다. 물론, 햐쿠닌쵸교회의 교인들 모두 대단히 개성적이다. 그러기에 햐쿠닌쵸교회의 예배와 집회에는 여러나라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가 독특하다는 경우에 일반적으로는 하드부분과 소프트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햐쿠닌쵸교회는 하드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교회재산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예배당은 물론 없고, 교회가 갖고 있는 물건이라고 하면, 성경과 찬송가, 그리고 1978년부터 사용하고있는 리드올겐 뿐이다. 이 올겐도 본래는 휴대용으로 겉에 베니야판을 붙인 단순한 것이다. 이와같이 하드부분을 갖고있지 않으므로 집회라는 소프트부분을 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배장소는 한 해에 2-3번은 수양회와 묘지예배 등으로 교회가 있는그대로 이동을 해, 예배장소가 바뀐다. 매 주일에는 테이블과 의자의 위치를 바꾸는데, 입 구ロ자 아니면 오각형의 형태로 될 수 있는 한 모두의 얼굴이 보이도록 배치를 한다. 그곳에는 강대도 없고, 십자가와 같은 장식물도 일체 없다. 따라서 사회자를 비롯해 모두가 어느곳에 앉아도 상관이 없다.
 주일예배 외에도 햐쿠닌쵸교회에는 여러 집회가 있는데, 그 특징은 시간적으로 길다는 것이다. 가정집회, 성경공부, 고난주간 가정집회등이 있는데 집회시간은 평균 3-4시간이다. 모든집회에는 식사가 포함되어있다.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까지 넣으면 더 길어진다. 모든 집회에 빠짐없이 출석을 하면 연간 100회정도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된다. 이점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교인들 사이의 교제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말뿐인 사귐이 아니라, 함께 만들고, 함께 먹고, 참가자 모두가 차례로 발표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주일예배는 일요일 오전 10시반에 시작하여 대개 오후1시경에는 끝난다. 물론 말하는 시간이 길다. 대개의 경우 30분에서 1시간 정도이다. 하지만 예배중에 졸고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우선 설교라는 표현이 없고, 대신에 증사証詞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담임목사는 격주로 증사를 담당하고, 나머지 격주는 교인과 관계자가 차례로 증사를 한다. 교인은 3-4년에 한번, 자신의 삶과 신앙에 대해 증사를 하게 된다. 따라서 예배출석자는 매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된다. 목사 역시 여러 사람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증사로 말씀 되어진 내용에 대해 예배 안에서 참석자 전원이 응답応答시간을 갖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그 내용은 기본적으로 예배중에 전해진 증사에 대한 감상이나 질문, 때로는 비판도 포함 되지만, 시사적인 테마로 달아오르는 경우도 가끔 있다. 결과적으로 응답을 통해 그 날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각자 안에 소화 된다고 볼 수 있다. 전하는 사람의 일방적인 이야기 일 경우 소화 불량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스타일이면 증사자가 말이 서투를 경우에도 응답을 통해서 그 내용을 충분히 나누고 이해하게 된다. 이 스타일은 모두가 대화를 나누고, 이해를 나누고, 결단을 함께 할 수가 있다.
 덧붙이자면, 이 응답 스타일은 주보에서도 볼 수 있다. 주보는 B4 사이즈 종이를 세로로 사등분하여, 윗 부분 왼쪽에 예배순서, 오른쪽에 집회안내와 알림, 아랫부분은 왼쪽에 목사일지, 오른쪽에 회원일지를 배치하고 회원일지는 교인들이 매주 번갈아가며 쓴다.
 응답에 관해서는 다른 교회에서도 하고 있다고 생각되나, 그 경우에 있어서도 예배 안에 넣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교회에따라 다를거라는 생각이 든다. 햐쿠닌쵸교회의 경우에는 증사 뒤의 응답시간을 예배안에 넣고 싶은 마음에서, 식사까지도 예배 안에 넣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교인모두가 의논해서 정한 예배 형태이다. 이 점 또 하나의 특성이라 생각된다.
 한 예로 지난주(2007년7월22일) 주일예배의 모습을 간단히 소개하고 싶다. 이 날 증사를 해 주신 분은 교인인 베르트란(Vida.T.M.Beltran)씨이다. 그녀는 필리핀 사람이다. 그녀의 남편 역시 햐쿠닌쵸 교인으로, 국적은 터어키이지만, 터어키 국내에서 박해받고 있는 쿠르드인으로서 현재 일본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고 있는 타스쿤 살만(Taskin Salman)씨이다. 일본에서 만난 두사람 사이에는 초등학교 1학년인 딸, 지란(Beltran Zilan)이 있다. 지란 양은 일본에서 태어나, 부모의 나라에는 가 본 적이 없고, 말도 모른다. 올해 3월 동경지방재판소로부터 특별영주가 불허 되어, 현재는 동경고등재판소에 공소중에 있다. (2008년3월25일, 동경입국관리국은 쿠르드인 타스쿤씨 일가 3인에 대해, 초등학교 1년인 딸의 취학을 위한 인도적인 이유로 정주자定住者로서 1년간의 재류특별허가가 나왔다. 지란 양은 현재 일본 초등학교 4학년) 만약 일본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가족 3인이 뿔뿔히 흩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세 사람 모두 일본어가 매우 유창하다. 이 날 예배에서 그녀의 테마는 "나의 일본에서의 생활체험", 성경은 마태복음 11장 28절과 갈라디아서 6장 9절을 읽고, 일본어로 50분간 눈물을 보이며 증사를 하였다.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하고, 응답시간에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 지를 비롯해, 재판의 현황등을 듣고, 마지막으로 함께 기도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러면 이와같은 형태로 예배를 시작한 것이 언제 부터 였는지, 햐쿠닌쵸교회의 기록을 보면 1973년 4월 15일 예배부터이다. 그 때는 예배를 일단 끝내고, 식사를 한 후에 대화를 나누었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26일 예배부터 식사와 응답이 예배 안에 넣어져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다. 당시는 아직 햐쿠닌쵸교회가 아니라, 오쿠보집회라고 해서 교단에도 가입하지 않고, 목사가 없는 시기로 교회의 시작이 1970년 11월 이었던 것으로 판단을 하면, 상당히 빠른 시기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로 예배를 시작 한 것이 된다.
 식사시간에는 우선 각자의 활동보고와 안내등을 한다. 처음 햐쿠닌쵸교회에 출석한 사람의 소개와 자신들의 소개도 한다. 결코 경건한 분위기로서의 식사가 아니고, 인사를 하거나, 안부를 물으며 돌아다닌다. 말 소리와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예배 때의 식사는 각자가 도시락을 지참한다. 처음 오신 분이나 도시락을 가져 오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해도 조금씩 나누어 먹으면 부족함이 없다.
 가정집회와 성경공부등에서는 식사를 준비하지만, 그 식탁을 크게 돕는 것은 전임자인 아소목사의 논밭이다. 아소목사는 담임목사를 농민이 되겠다는 이유로 사임을 했다. 유기재배로 만든 맛있는 쌀과 야채등 식사를 위한 재료를 공급해 주시고, 후임인 나에게도 쌀이 떨어지지 않도록 공급해 주신다.
 이같은 식사에 관해 성서적인 근거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 일 것이다. 인류가 생긴 이래, 식사는 생명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삶의 하나이다. 그러기에 종교라는 면에서도 소중하게 다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공동체가 살아가기위해 먹을거리를 어떻게 서로 나눌 것인가에 대해, 출애급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르친 내용으로부터도 쉽게 알 수 있다. 구약성경에는 광야에서 경험한 맛나의 경우(출애급기16장), 신약성경에서는 적은 양의 음식을 서로 나누어 4천명, 5천명이 함께 먹은 사건등이 있다(마태15:32-39, 14:13-21등).
 그리고 출애급을 기념하는 유월절(출애급기12:11이하)이나 야훼공동체의 계약갱신의 때에도 식사가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출애급기24:9-11). 예수의 최후의 만찬도 이 유월절 식사의 일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마태26:17-25). 이와 같은 종교적인 식사에는 오랜 전통속에 의례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가게 되지만, 결코 형식만이 아니다.
 예수의 공적 활동기에 있어서 식사 때를 즐겼다고 볼 수 있다. 살기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교제와 가르침의 일부로서도 중요한 시간이다. 레위의 집에서 식사 할 때는(마가2:13-17) 많은 세리와 죄인들도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마가2:15). 나환자 시몬의 집에서도 식탁을 같이하고(마가14:3),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서도 식탁을 통해 서로의 교제를 즐거워 했다(누가10:38-42). 부활 후에 호반에서 제자들과 식사 할 때는(요한21:15이하) 제자들과의 연대를 확인한다. 세리 삭개오의 집에서는 삶을 바꾸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진다 (누가19:1-10).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않지만, 예수와 주변사람들과의 식사는 매일같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성서에는 식사 때에 굶고 있는 사람과 서로 나누고, 병을 고치고, 가르침을 행하고, 화해와 용서가 있었다. 식탁을 함께하는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은 연대감을 깊이하며 예수가 걸은 길을 따르려는 결단을 거듭했다고 볼 수 있다. 햐쿠닌쵸교회의 예배에 있어서의 식탁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와 같다고 생각하면서 예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고자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결단하며 연대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2007년7월25일 가정순)
 
 
새롭게 바뀐 예배장소의 풍경
 예배장소를 교풍矯風회관에서 타카다노바바高田馬場로 옮겨, 2번째 크리스마스를 지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50명이 들어가 좁지도 않고 널지도 않은 딱 알맞은 공간이었다. 오래된 전문 학교의 교실을 빌려 사용하고 있으므로 3명이 앉을 수 있는 책상이 매우 무겁기도 하고, 아무도 없을 때에는 조금 살풍경한 공간이지만, 원형으로 책상을 재배치히고 그곳에 사람들이 앉으면 여러 색깔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간으로 변한다. 학기 시작 할 무렵 여학생이 많은 교실처럼 짙은 향수의 향기가 아니라,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흰색이 마음을 편안하게하는 온화한 사람들의 따뜻한 향기이다.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장식이고 내용이기도 하다. 때에따라 그리웠던 얼굴, 아름다운 올겐 음과 찬송소리, 말씀을 조용히 경청하는 사람들의 모습, 음식 냄새, 눈물과 웃음으로 정열이 넘치는 멋진 공간으로 바뀐다. 분명 원시 기독교의 가정에서 드렸던 예배는 이와 같았지 않았을까? 이 세상 어떤 예배당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10월 첫번째 예배 때에 정면의 흑판을 천으로 장식하자고 제안했을 때에 교회건축에 오랜 경험이 있는 교인이 "장식하지 않은 있는그대로가 좋다"고 하신 말씀은, 다시 한번 햐쿠닌쵸교회의 바람직한 모습과 교회형성의 의미를 가르쳐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2009년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벅차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려 하든 서로 믿고, 격려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분에 넘치는 이야기일까. 이 한 해를 함께 보낸 햐쿠닌쵸교회 여러분,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2009년12월27일 주보・목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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