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4 좌담회
1990년 이후의 참가자의 좌담회

 40주년을 맞이하는 햐쿠닌쵸교회에는 발족 당시부터 출석하고 있는 교인과 그 후에 새로이 함께 하는 교인 들도 있습니다. 먼저 이 새교인들을 중심으로 좌담회를 열고, 햐쿠닌쵸교회에 오게 된 계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햐쿠닌쵸교회에 대해 기탄 없이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사회 인상에 남아 있는 것이나 교회에 오시게 된 계기 등, 있는그대로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2004년부터 나오게 되었습니다. 선배에게 추천받은 것이 햐쿠닌쵸교회에 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일본으로 유학 올 때 선배로부터 꼭 세명의 사람을 만나도록 추천 받았습니다. 그 중 한 분이 가 목사님이셨습니다.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교회는, 규모가 크지않고, 목사님이 교인 한사람 한사람을 돌부는 것이 가능하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햐쿠닌쵸교회는 저에게 있어 이상적이 었습니다.
 6년간 햐쿠닌쵸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크게 제 안에 남아 있는 것은 처와 신앙에 있어서 서로 존중하게 된 것입니다. 처는 햐쿠닌쵸쵸회의 분위기에 익숙해 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지금은 집 근처의 교회에 가끔 다니고 있습니다. 실은 가족이 함께 교회에 다니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만, 그녀의 교회에 대한 생각을 제가 존중하고, 그녀도 저의 교회에 대한 생각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처음 온 것은 2004년 8월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계기는 처(T)였습니다.
 당시 아직 저는 센다이仙台에서 학생이었습니다. 1년에 수 차례만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던 지금의 처가 그 때 햐쿠닌쵸교회에 다니고 있어서 그녀로부터 햐쿠닌쵸교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는 교회이고, 자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장소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소중한 장소인 햐쿠닌쵸교회는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서 그녀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 혼자서 가 보았습니다.
 당시는 아직 교풍회관이었습니다만, 처음 갔을 때에는 불안했었습니다. 그것은 저도 학생시절에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만, 보통 예배 형식의 교회였습니다. 그와는 전혀 다른 형태였기에 놀랐고, 동시에 불안해 졌습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난 후 왜 그녀가 햐쿠닌쵸교회를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햐쿠닌쵸교회가 현장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인상에 남았던 것은 전에 다니던 교회는 어딘지 거리감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당시 저는 아직 승려가 아닌 때 였습니다만, 승려가 되는 것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교회에 앉아 있다는 것이 애매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치를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제가 승려라고 말하자, 몇몇 분으로부터 "재미있네"라는 말을 듣기도하고, 아소목사님으로부터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중에는 나와 같은 승려가 있고,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라는 긍정적으로 받아주셨던 것이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대학이 기독교관련학교였기때문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성경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이 있는 센다이仙台의 일본그리스도교단 센다이학생센터에도 다니고 있었고, 그곳에서 지금 남편(H)과 만났습니다. 센다이학생센터는 누구라도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분위기가 있어서, 저는 기타반과 스터디투어 등에 참가했습니다.
 그 후 2002년 봄에 동경에 나와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도 거의 없었고 일하는 것도 순조롭지 않은 가운데 교회에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몇군데 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센다이학생센터에서 느꼈었던 것과 같은 편안한 마음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스타디투어에서 함께 방글라데시에 갔었던 T・M씨에게 하자, 햐쿠닌쵸교회가 맞을 거라고 말하며 「로바」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햐쿠닌쵸교회에 가보게됐습니다. 그리고 직감으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증사証詞의 내용도 좋았습니다만, 그 후의 응답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에도 와 보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입니다. 거기다 당시, 저는 코이시카와小石川에 살고 있었고 가 목사님도 가까운 곳에 사셨기에 교회에 갈 때에는 차에 태워 주셨습니다.
 인상에 남는 에피소드로서는 다니기 시작해서 얼마 안됐는데 증사를 하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남편 H가 명예회원이 된 것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온 것은 93년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서 목사님이 담임 목사님이리라 생각 해서 와 보니 가목사님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붙지도 떨어지지도 못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무슨이유에서인지 40주년 기념지 위원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것이 2005년 크리스마스입니다. 세례를 받기도 했고, 뭔가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으로 받아들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무서웠었어요. 지금하고 비교해보면. 모두 진지했습니다. 무섭게 발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곳에는 매주 올 곳이 아니고 일년에 수차례 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옅어졌습니다. 모두 화를 내거나 하지 않지요.
 지금도 갑자기 화를 낼 것 같은 특정한 테마가 몇가지 있긴 하지요.
 응답이 굉장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분들도 무서웠습니다. 그리도 학교 선생님들이 많아 말을 잘하는 분들이 많아요.
 다른 교회는 가족이 함께 다니는 분들이 많아 혼자 다니기가 그렇지요. 그 점에 있어서 햐쿠닌쵸교회는 혼자 다니는 분들이 많아요. 학생 때에 친구들과 다른 교회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타카마츠高松에 있었을 때에도 두번정도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만, 역시 가족으로 오는 분들이 많아 어울리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하쿠닌쵸교회도 처음으로 온 사람들이 어울리기 쉬운 분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모두 웃음)
 저는 상경해서 다른 교파의 교회에 다녔었습니다. 대학이 기독교계열이라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께서 다니시던 교회였습니다. 작년 가을에 햐쿠닌쵸교회에 적을 옮겼습니다. 여러 일들이 겹쳐 교회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교회의 적을 빼고 싶었습니다만, 다른 교회로 가지 않는 이상 적을 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햐쿠닌쵸교회로 적을 옮기게 된 것입니다.
 햐쿠닌쵸로 정한 것은 이전 토미사카富坂기독교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는 말을 나눈적은 없습니다만 가상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소 목사님 농장 야채가 토미사카에도 보내져 와 모르면서도 받았습니다. 아소목사님이 계신 햐쿠닌쵸, 담임목사도 가상이기에 전입을 부탁했습니다.
 처음 왔을 때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까지 내가 다녔던 교회와는 모든 면에있어서 햐쿠닌쵸는 달랐기때문입니다. 그래도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저에게 있어서도 중요했기에 위화감은 없었습니다.
 수양회에 참가했을 때에 모두 학생 서클처럼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응답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2006년 봄쯤에 처음 왔었습니다. 결혼은 하지않았습니다만, 할까 말까 하던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가정은 불교입니다만, 지금의 남편(사회)의 권유로 다니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말로든 목사님 말씀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교회라고 해서,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고 하기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가서 이야기를 들으면 되지 않겠는가하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자기소개를 하게하기도 하여 이 교회는 매우 힘든 교회라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십자가도 없어서 조금 놀랬습니다.
 햐쿠닌쵸교회에 다니기시작했들 때에 마침 결혼과 직작을 옮기는 것이 겹쳐 매주 교회에 다닐 여유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여유가 생겨 작년 수양회에 처음으로 혼자서 참가해 보고 그 때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장래에 제가 크리스챤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 후에 가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지 않겠는가 하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가목사님 조금 심해요. 요 전번 부활절 전에 세례받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있어, 저는 세례를 받았다고 말했더니 그랬었냐고 말씀하더라고요.(일동웃음)
 조만간에 승려인 저에게도 세례이야기가 올지도 모르겠군요.(일동폭소)
사회 전바은 좋은 점을 많이 이야기 했습니다만, 후반은 좋지않은 부분도 부탁드립니다.
 예배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오후1시쯤에는 끝났었습니다.
 처은 온 분들이 긴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자신도 뭔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늘 내용이 학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자가 많아서인지도 모릅니다. 분명 이야기가 어럽다고 생각합니다. 가목사님 말씀도 어렵고 응답의 내용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응답 때에 말하는 사람이 같은 것이 아쉽습니다. 좀 더 여러 사람들이 주저말고 말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르긴해도 모두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한 의견입니다.안좋은 점도 라고하니 감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햐쿠닌쵸교회의 분위기로서 늘 느끼는 것은 "선택받은교회"라는 의식이 느껴집니다. 예를들면 햐쿠닌쵸교회 교인들 자신이 햐쿠닌쵸교회는 특수하다, 조금 이상한,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다른교회와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모두 웃을 때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어떤 면에 있어 자존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새롭게 온 분에게 있어 부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다른 교회로부터 오신 분들에게 있어서는 비판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을는지요. 그러기에 햐쿠닌쵸교회가 갖고 있는 생각을 조금 더 정중히 설명하는 기회가 있어도 좋을 듯 싶습니다.
 최근 젊은 사람이나 새로운 교인들을 오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화제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어떤 아이디어라도 있읍니까. 홈페이지를 충실히하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생각 합니다만.
 교인을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햐쿠닌쵸교회의 좋은 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 불러들일 필요는 없지만, 햐쿠닌쵸교회와 같은 교회가 더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가 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 절은 절에 속해 있는 집(檀家)이 있기에 기본적으로 포교를 하지 않아도 되는지요.
 지금까지는 그랬었습니다만, 앞으로는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교회는 어디든지 가족이 봉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절도 그와 같아 부모가 속해있는 절에 자식들도 속해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절을 바꾸려는 일은 없습니다. 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함으로 성립이 되는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에 저는 위기감을 갖고 있습니다. 가족형태도 변하고 있기때문에 부모의 묘에 자동적으로 자식들도 들어간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얼만전에 "천의 바람이 되어"千の風になって라는 노래가 유행을 했습니다만, 묘지에 가보아도 그곳에 나는 없습니다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만 이대로라면 지금까지 절이 해온 것을 전부 부정하는 것이됩니다. (일동웃음) 하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진다고 하는 것은 그런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시대는 포교가 필요해 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거처의 제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교회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곳을 만드는 것이 교회와 절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은 본래의 모습으로 절이 돌아가는 것이라도 생각합니다. 절의 본래의 역할은 지금 말하는 아동양호시설이었거나 고령자복지시설이었거나 모자보호소였거나 학교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고, 있을 곳 이었던 것입니다.
司会 흥미깊은 말씀 더 듣고 싶습니다만, 햐쿠닌쵸 이야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만.
 교회 장소에 대해서 입니다만, 계속 이곳을 빌려쓰게 되는지요. 도심은 집세가 비싸기도하고.
 수양회 때에 그 화제로 논쟁했던 것이 인상에 남아있습니다. 그 때 경매물건을 교회로 구입하면 좋지 않을지 하는 의견이 나왔을 때에 가 목사님이 교회당을 갖는 것에 강하게 반대 하셨지요.
 부동산을 가지면 그만큼 그 관리만으로도 벅차게 되기 때문이지요.
 저는 부동산을 갖고 있는 교회로부터 부동산이 없는 교회에 왔기 때문에 부동산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부동산을 가지면 그만큼 여러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지역 속에서의 교회라는 것을 생각하면 교회당이 있는 편이 여러모로 지역활동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크리스챤은 흩어져 나가는 것이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해서 여러 곳으로 흩어져 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소도 계속해 옮겨도 좋지 않을지, 정주하는 것 보다는 움직여 간다고 하는 이메지 입니다.
 앞에서 응답 때에 발언하는 사람이 정해져있다는 말을 했습니다만, 마침 어제 동경에 있는 교단의 학생센터(SCF)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의 책임자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 나눔입니다. 모두고 둥글게 앉아 모두 한마디씩 이야기하는 방식입니다.
 지금의 응답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 발언하고 있습니다만, 햐쿠닌쵸교회에서도 연말에는 모두가 한마디씩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때를 아주 좋아합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하도 되고, 그 때 생각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없고 단지 듣기만 합니다.
 저에게 있어 햐쿠닌쵸회교회는 아주 마음 편한 곳입니다만, 지금 말한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회가 적지는 않은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 그것을 한달에 한번정도 하면 가상도 증사 준비를 한달에 한번하게 되니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동웃음)
좌담회 일시 2010년5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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